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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 [대담] 정책·경쟁·투자 3박자 '광속 대한민국' 키웠다 [매일경제]
담당자    
등록일 2012-06-04 조회수 8490
1970년대 말 정부는 `정보화 사회`를 기치로 내걸고 이 분야 해외 석학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한다.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고 당시 귀국한 석학들이 연구에 매진했다. 1982년 5월 하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경북 구미 한국전자기술연구소(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)의 컴퓨터를 전용선으로 연결하는 데 성공한다. 국내 인터넷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.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성공한 정보통신기술(IT) 혁명이었다. 대만이나 싱가포르보다 10년이나 일렀다. 올해 5월 말로 30주년인 셈이다.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은 `대한민국 인터넷 30주년 기념식`을 지난달 30일 열었다. 매일경제신문은 이 행사의 일환으로 첫 인터넷 연결에 성공해 `한국 인터넷의 아버지`로 불리는 전길남 게이오대 석좌교수 겸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등 전문가들을 초청해 `대한민국 인터넷 30년,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자`는 주제로 과거 성과와 미래전략 등을 짚어보는 특별간담회를 가졌다.

전문가들은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은 인터넷을 잘 가꿔 세계 5대 경제대국 도약 발판으로 삼기 위해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. 간담회에는 전 교수 외에 서종렬 한국인터넷진흥원(KISA) 원장, 유태열 KT 경영경제연구소장, 최종원 한국인터넷윤리학회장, 박주만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이 참석했다. 간담회는 장종회 매일경제 모바일부 차장 사회로 진행됐다.

-한국 인터넷이 최초로 어떻게 연결됐나.

▶전길남 교수=컴퓨터를 전용선으로 연결해 1982년 5월 하순에 성공했다. 컴퓨터를 연결해 인터넷을 하는 것은 일본과 호주도 성공하지 못할 만큼 당시엔 굉장한 것이었다. 젊은 연구원과 대학생들이 경험도 없고 시설도 안 됐지만 시도해 보자는 정신으로 덤볐다. 운도 따랐다. 인터넷 프로토콜(통신규약)인 TCP/IP에 베팅한 것이다. 당시 한국통신(현 KT)의 도움도 컸다. 당장 돈이 안 되는 사업이지만 투자를 했다.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.

-인터넷 30주년의 의미는.

▶서종렬 원장=인터넷은 이제 우리 생활에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됐다. 30년간 우리나라가 인프라를 잘 만들었으니 앞으로 30년간 한국의 인터넷이 세계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. 이는 정부의 정책과 업체 간의 협력, 적절한 투자 등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. (이하 중략)


http://news.mk.co.kr/newsRead.php?year=2012&no=338841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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